그것은 흑묘정이 개점하기보다, 조금 전의 일.
알타리아 공화국, 그곳은 대륙 서부에 위치한 유서 깊은 나라다. 해협을 건너면 세빌 노바의 황량한 대지가 펼쳐져 있고, 그곳을 사흘 밤낮 철도로 빠져나가면 작은 섬나라에 이른다.
동방 황국…… 이 나라가 알타리아를 군사 침공한 것은 벌써 수십 년 전 이야기이다. 사소한 사건을 계기로 생긴 불씨는 순식간에 타올랐다.
재빨리 백기를 든 알타리아를 황국은 직접 병합하려 하지 않았다. 황국이 가진 야심은 더욱이 그 앞――. 대륙 최대 국가인 제정 로벨리아에 있었기 때문이다. 긴 국경을 접하고 있는 이 나라는 후방 거점으로 안성맞춤이었다. 공화국 정부는 황국이 조종하는 꼭두각시가 되어, 어느덧 황군이 멋대로 주둔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혼란과 충돌 끝에 알타리아인과 동방인은 기묘한 긴장 관계를 유지하며 살고 있었다…….
* * *
밤하늘은 얼어붙을 듯한 추위로 쌓여 있다.
동쪽 산맥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안개처럼 가랑눈을 흩날린다. 코트를 목덜미까지 굳게 잠근 채 푹 후드를 뒤집어쓰고도 아직 닥쳐드는 찌르는 듯한 추위. 가랑눈은 털 위에서, 녹지 않고 계속 엉겨 붙었다.
그래도 새해를 맞는 이 날, 사람들은 길거리로 나섰다. 알타리아의 수도인 레발자크는 축제 기분으로 들떠, 여기저기서 흰 날숨이 새어 나온다. 덧없는 랜턴 불빛에 의지해서 총주교회를 목표로 흥겨운 행진을 한다. 다만, 성가 광장은 십여만 명의 사람들로 채워지고 있어서, 지금 와선 부지 안으로 들어갈 수조차 없겠지만.
릴리아 「죄송합니다, 지나갈게요」
릴리아는 그렇게 외치고 휠체어를 민다. 눈에 바퀴가 묻혀 생각처럼 나아가지 않는다. 신기한 듯 바라보는 주위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행렬 옆을 빠져나간다. 휠체어 위에는 릴리아보다 한결 작은 소녀의 모습. 스톨을 겹겹이 두르고 모피 모자를 깊숙이 뒤집어쓰고 있다. 어깨에는 얕게 눈이 쌓여 있었다.
돌연히 오가던 사람들이 발을 멈추고 소리친다. 잠시 뒤 피융 하고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자홍색 빛이 번쩍 주위를 감싼다. 그리고 굉음, 폭죽을 쏘아 올린 것이었다. 새해를 축하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두 번째, 세 번째…… 폭죽은 계속해서 하늘로 오르고, 그때마다 다시 환호성. 이렇게 되면 이제는 행진할 상황이 아니다.
이제 누구도 릴리아에게 주목하지 않았다. 꽉 휠체어 손잡이를 쥔다. 그리고 살짝 행렬을 떠나 옆길로 걸어 나간다.
경관 「아가씨, 무슨 문제 있습니까?」
불러세우는 소리에 깜짝 놀랐다. 콧수염을 기른 경관이 등 뒤에 서 있었다. 바위를 연상시키는 중후한 회색 코트로 몸을 감싸고 있다. 어깨에는 소총.
릴리아 「여동생이 몸이 좋지 않다고……」
경관 「아, 그건 안 좋군, 따뜻한 장소까지 안내하지요」
릴리아 「조금 쉬면 괜찮아요」
경관 「사양 마시고. 여동생분, 몸은 어때?」
경관은 무릎을 낮추고 휠체어 속 소녀를 들여다본다. 어둠 속에서 표정은 보이지 않는다. 실이 끊긴 듯 고개를 떨어뜨리고, 모자 가장자리에 금발을 늘어뜨리고 있다.
번쩍 밤하늘이 빛난다. 또 폭죽을 쏜 것이다. 한순간 반짝임에 소녀의 옆모습이 비친다. 지그시 닫힌 눈. 매끄러운 뺨. 거기에서는 아무런 감정도 읽을 수 없다…….
경관 「……인형?」
릴리아 「자고 있을 뿐이에요. 감사합니다, 실례합니다……」
릴리아는 빠른 어조로 변명하고는 무거운 휠체어를 밀고 나갔다.
경관 「아, 잠깐, 너!」
불러서는 목소리를 뿌리치듯 골목 어둠 속으로 빠르게 뛰어간다.
연발 폭죽을 쏘고 다시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른다. 경관은 당장 쫓아오지 않았다. 늦기 전에 지금 도망가지 않으면 동료를 부를지도 모른다. 빨리 어디로 숨어야 한다. 근데 어디로? 거리는 쥐죽은 듯이 조용하고, 어느 집이고 창을 닫고 있었다.
릴리아 「……아」
따뜻한 빛이 비쳤다.
그곳은 석조로 만든 아담한 집이다. 붉게 칠해진 벽. 2층에서 부드러운 랜턴 불빛이 새어 나왔다. 창가에 한 소녀의 모습.
유리색 눈동자가 릴리아를 바라본다.
고개를 갸우뚱거리자 어두운 벚꽃색 머릿결이 흔들렸다.
* * *
어두운 벚꽃색 머릿결을 가진 소녀는 아무것도 의심할 줄 모르는 얼굴로 웃었다.
난로는 약하지만, 바깥 공기와 비교하면 이곳은 천국이다.
비틀비틀 열심히 장작을 운반하고 차례로 지핀다. 그렇게 많이 넣어서 과연 잘 탈까 생각할 정도로. 쓱쓱 얼굴을 닦지만 그을음이 묻는 바람에 코끝이 검게 더러워지고 말았다.
섬세한 무늬가 들어간 기모노는, 동방인 특유의 복장이다. 등에는 소녀에게 어울리지 않은 쥐색 배낭. 연돌이 하나 뻗어 있고, 희미하게 수증기를 뿜고 있었다.
「고마워. 그……」
릴리아는 젖은 후드를 내린다. 한 갈래로 묶어둔 금발이 갑갑함에서 해방된 듯 날린다.
「너는 혹시…… 인형?」
그리고 방에 안내받았을 때부터 계속 안고 있던 위화감을 입에 담는다.
아무 거리낌 없이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하이자쿠라…… 난 릴리아야」
릴리아 앞에 있는 휠체어, 그 앞에 몸을 구부려 얼굴을 들여다본다. 아까부터 계속 실이 끊긴 듯 시선을 내리깐 채다.
「이 아이, 인형이야」
「가극 인형이야」
「무대에서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인형이야. 미리 명령 전문을 보내두면, 인간은 못 추는 멋진 춤을 추고, 레코드가 무색할 정도로 솜씨 좋게 노래를 불러」
그러나 문득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린다.
「미안해, 하이자쿠라, 나 거짓말을 했어」
신년 축제에 왔지만, 가족과 떨어지고 말았다.
여동생은 병을 앓고 있어서, 이 추운 날씨 속 기다리면 몸이 상한다.
그래서 잠깐 실내에 머물도록 해줄 수 있을까.
그렇게 말해서, 이 따뜻한 방에 있을 수 있게 허락받았다.
하지만 그건 모두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했을 뿐이다.
「난 말이야, 레발자크 소녀 가극단 단원이야. 도망 온 거야, 이 아이와 함께」
쾅쾅쾅!
갑자기 난폭한 노크 소리가 울려, 릴리아는 심장이 옥죄는 느낌이었다.
『밤에 실례합니다! 경관입니다! 토오마 박사는 계십니까!』
굵은 목소리가 울린다.
희미하게 들리는 금속음은 아마 소총에 달린 쇠붙이겠지.
하이자쿠라는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듯이, 그저 갈팡질팡하고 있다.
「부탁해, 없다고 말해 줘……」
릴리아는 간청하듯 말했다. 엉겁결에 하이자쿠라의 작은 손을 잡는다.
언뜻 휠체어에 실린 인형을 쳐다본다.
하이자쿠라에게 협력을 받아야 한다. 어떻게? 이 소녀형의, 순진하고 무력한 인형 마음에 호소해야…….
「이 아이, 징용돼 버려. 전쟁에 끌려가는 거야」
밖은 모르게 작은 소리로, 그런데도 간곡히 호소한다.
「내 친구야, 헤어지고 싶지 않아……그래서 도망쳐 온 거야」
생각대로 릴리아가 호소한 간청은 하이자쿠라에게 닿았다.
꼬옥 하이자쿠라가 릴리아의 손을 양손으로 쥔다.
조금 검댕으로 더러웠지만, 그래도 포근하고 따뜻했다.
당당한 기세로, 힘차게 끄덕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