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마 돌 앵콜
04-2 흑묘정의 토끼 (2)

 그로부터 얼마간 시간이 지났다――

 구름 한 점 없는 상쾌할 정도로 활짝 갠 하늘.
 창문에서 비치는 햇빛이 흑묘정 플로어 바닥을 비추고 있었다.
 그런 햇살이 만들어 내는 볕과 그늘이 가게 안을 모던한 분위기로 물들이고 있다.
 동시에 축음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한가로워서
 동적임과 정적임이 공존하는, 우아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이었다.


 흑묘정 문이 열리고 고객에게 인사를 하는 카라스바 씨.

하이자쿠라 「역시, 평소대로네요」
우사미 「응, 평소대로네」

 평소와 다르지 않은 미소로 시중을 드는 카라스바 씨를 나와 하이자쿠라가 주방에서 엿보고 있었다.
 얼마 전 동요한 모습이 마치 거짓말 같다.

겟카 「카라스바는 흑묘정 리더로서의 책무를 남달리 의식하고 있으므로 일할 땐 언제나와 같습니다」

 접시를 치우고 주방에 돌아온 겟카가 우리에게 말한다.

하이자쿠라 「대단해요. 저따위는 새 메뉴를 생각하기 시작하면 머릿속이 가득 차버려요……」
우사미 「그, 그렇게나 고민하고 있구나」
하이자쿠라 「네…… 어제도 밤까지 계속 생각을 했지만 잘 정리되지 않았어요」
우사미 「내가 갖고 있는 이 레시피 수첩을 볼래? 일단 이 안에 없는 메뉴를 생각해 보면 어떨까?」
하이자쿠라 「그렇네요, 역시 손님께서 새로운 메뉴를 드셔 주셨으면 좋겠고……」
하이자쿠라 「!!?」
우사미 「???」
겟카 「!?」

 주방에 불쑥 얼굴을 내비친 카라스바 씨가 주문서를 보이면서 영업용 미소를 띠고 우리를 보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꾸짖는 말투가 되는 장면에도 불구하고 웃는 얼굴이라는 점에서 나와 하이자쿠라, 겟카까지 표정이 굳어진다.

우사미 (평소대로……일까?)
하이자쿠라 (웃는 얼굴이지만 무서워요……)
겟카 (바로 일하러 돌아가는 것이 상책입니다)

 우리들은 속닥속닥 말하곤, 한번 고개를 끄덕이고 각각의 업무에 복귀한다.

하이자쿠라 「녜에!」

 불러 세워진 하이자쿠라가 그 자리에서 허리가 팽팽히 튀며 멈추어 선다.

하이자쿠라 「고, 고맙습니다」
하이자쿠라 「제가 전하고 싶은 것……이요?」

 새 메뉴 조언에 귀를 세우면서 나는 난로 앞에서 새로 주문받은 마카로니 요리를 만든다.
 삶은 뒤 하룻밤 냉장고에서 재운 면에 듬뿍 치즈를 휘감고 볶은 양파와 토마토소스를 곁들인다.

우사미 「저……이 마카로니의 토마토소스는 누가 제안한 메뉴였나요?」

 나는 프라이팬을 흔들면서 카라스바 씨에게 물었다.

우사미 「아ー, 그래서 군인 분들이 자주 주문하러 오는군요」
하이자쿠라 「우뮤뮤뮤~…… 제가 전하고 싶은 메뉴~…… 뮤~」
하이자쿠라 「네, 열심히 해볼게요!」

 카라스바 씨는 언제나의 카라스바 씨로 돌아와 있었다.
 하이자쿠라에게 제대로 리더로서 적확하게 조언한다.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알기 쉬운 방식으로.
 이 점이 바로 그녀가 흑묘정의 리더인 이유이기도 하다고 생각했다.

우사미 「어? 앗! 아차!」

 그만 카라스바 씨가 한 말에 의식을 뺏겨서 조리를 소홀히 해버리고 말았다.
 마카로니가 눌어붙어서 프라이팬에서 매캐한 냄새가 나는 연기가 치솟고 있었다.

우사미 「이게 오늘 내 식사겠네…」

 하하…… 하고 힘없이 웃을 수밖에 없었다.

*       *       *

 또 며칠이 지났다.

 점심이 지나고, 저녁이 되고, 흑묘정 하루가 막힘없이 진행된다.
 단골 손님이 와서 언제나의 메뉴를 주문하고, 익숙한 시간을 보내준다.
 하이자쿠라는 시중을 열심히 들면서도 항상 새 메뉴를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접시를 나르는 도중에도 돌연히 "앗!"하고 무엇인가를 번뜩인 듯 얼굴이 밝아진다」
 하지만 바로 고개를 젓고 다른 방안을 생각한다.
 겟카는 여전히 마이페이스로 실수 없이 시중을 들고 있다
 그리고 카라스바 씨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미소를 유지할 수 없었다.
 고객에게 안 보이는 장소에서 깊게 한숨을 쉰다.
 요즘 들어 항상 이렇다.
 밤의 용무라는 일이 얼마나 우울한 걸까……?

겟카 「주문입니다」
우사미 「고마워. 음, 모둠 과일……? 드문 주문이 들어왔네」

 파르페나 아이스크림을 사용한 선데는 이따금 주문이 들어온다.
 하지만 이 모둠 과일은 좀처럼 들어오지 않는다.
 그저 과일을 자르고 접시에 담는 메뉴로 과일을 많이 쓰는 만큼 가격이 약간 높다.
 또한 자르는 방법도 특수해서 내 자신이 가진 커팅 기술도 시험받는다.

우사미 「그럼 해 볼까」

 칼집에서 과도를 꺼내고 과일을 준비한다.
 사과를 껍질째 V자로 자르고 조금씩 비틀거나, 오렌지 껍질을 끈으로 써서 리본처럼 가볍게 묶거나.
 레시피 수첩에 그려진 순서대로 자른다.
 「커팅의 요령은 리듬입니다♪」라는 메모도 쓰여 있었다.

우사미 「그러고 보니 이 메뉴는 누구 제안일까?」
겟카 「카라스바입니다」
우사미 「카라스바 씨?」
겟카 「옛날 신세를 진 가게에 있던 메뉴로, 추억으로 남겨두고 싶어 제안했다고 합니다」
우사미 「헤에, 추억이 담긴 메뉴군요」

 카라스바 씨가 미묘하게 눈을 피한다.
 메뉴로 남길 정도인데 좋은 추억이 아니었던 걸까?

겟카 「그 당시 카라스바는, 필사적이었습니다」

 카라스바 씨가 배낭의 연돌에서 퐁하고 증기를 내뿜는다.
 방열이 충분하지 않았는지 조금 얼굴이 붉다.

겟카 「흑묘정를 지탱하느라 매우 열심히였습니다」

 겟카는 진지한 눈으로 카라스바 씨를 본다.


 흑묘정에도 역사가 있다.
 인간의 도움이 되기 위해, 전쟁이 끝난 후 새로운 거처를 찾기 위해, 자율인형들도 노력했다.
 누군가가 하는 말을 듣고 뭔가를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의사로 나아가는 길을 택했다.
 지금 흑묘정에 실려있는 메뉴는 그러한 발자취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겟카 「그래서 이 모둠 과일을 주문받을 때마다 생각합니다」

 겟카는 눈을 감고 가슴에 손을 댔다.

겟카 「그, 귀여운 카라스바의 모습을……」

 카라스바 씨의 연돌에서 푹푹 증기가 뿜어나왔다.
 주방에 달콤한 땅콩버터셰이크 향기가 진동한다.

우사미 「와아앗, 모, 모둠 과일, 완성했습니다!」

 아름답게 커팅한 과일을 백자 접시에 담아 두 손으로 내민다.

겟카 「……잠시 피난했습니다」

 주방의 구석 뒷문에서 얼굴을 내민다.

우사미 「하하……부탁드립니다」


 카라스바 씨가 내게서 모둠 과일을 받아 시원스럽게 시중을 든다.
 쭉 펴진 등이 아름다운 뒷모습이라고 생각했다.

*       *       *


 카라스바 씨가 오늘 마지막 손님을 배웅한다.
 언제나처럼 허리를 편 채 마치 잰 듯한 각도의 인사.

오토메 「자, 그럼 장부 확인은 내가 하지」

 오쿠노미야 씨 목소리에 카라스바 씨 어깨가 살짝 튀어오른다.

겟카 「플로어 청소와 간판 정리는 맡겨두는 겁니다」
하이자쿠라 「카라스바 씨,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뒤돌아보며 어깨너머로 이쪽을 보는 카라스바 씨 눈은 기분탓인지 생기가 사라져 있었다.


 카라스바 씨가 나가고 몇 분 뒤.
 흑묘정의 폐점 작업도 끝나고 자유 시간이 된다.
 평소 같으면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을 하이자쿠라가 아직 플로어에 남아 있다.
 가게 가장 안쪽 자리에 앉아 인상을 쓰고 흑묘정 메뉴판을 빤히 쳐다보며 신음하고 있었다.

우사미 「하이자쿠라, 왜 그래?」
하이자쿠라 「아, 우사 씨. 실은 새 메뉴로 아직 고민하고 있어서……」
우사미 「나라도 괜찮다면 상담에 응할게」

 나는 하이자쿠라를 보고 웃으면서 맞은편에 앉는다.

하이자쿠라 「오늘도 일하면서 줄곧 생각하고 있었어요」

 거기까지 말하고 문득 고개를 든다,

하이자쿠라 「생, 생각하면서 했지만, 일은 성실하게 했으니까요!」
우사미 「하하하, 괜찮아. 하이자쿠라가 무엇이든 성실하게 하는 건 알고 있으니까」

 어떤 일에도 전력.
 그것이 하이자쿠라가 가진 좋은 점이기도 하며 약간의 결점이라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다.

우사미 「그래서 지금은 어떤 메뉴를 생각하고 있어?」
하이자쿠라 「네. 맛있는 것을 잔뜩 드시면 좋겠고, 맛있는 음료도 잔뜩 마셔주시면 좋겠어요」
우사미 「응」
하이자쿠라 「그래서 모두가 자유롭게 골라 맘껏 먹고 마실 수 있도록, 큰 테이블에 요리를 늘어놓으면…… 어떨까요!?」
우사미 「그건 뷔페라고 하는 거야. 재미있지만 영업 형태가 바뀌고 말려나」

 나는 뺨을 긁적이며 쓴웃음을 짓는다.

우사미 「하이자쿠라는 손님의 어떤 얼굴을 보는 게 좋아?」
하이자쿠라 「손님의 얼굴이요? 그렇네요……」

 하이자쿠라는 관자놀이에 손가락을 대고, 음~하고 생각한다.

하이자쿠라 「……안심했을 때 짓는 미소, 일까요」
우사미 「안심했을 때?」
하이자쿠라 「네! 식사가 끝나고 단것을 먹었을 때처럼…… 환하게 짓는 웃음이에요」
우사미 「디저트나 과자를 먹으면 나도 모르게 웃는 얼굴이 되니깐」
하이자쿠라 「저도 단팥빵을 먹으면 무심코 웃어 버려요!」
우사미 「그럼 그런 방향으로 좋지 않을까?」
하이자쿠라 「그렇다면 단팥빵을 메뉴에 넣으면 좋을까요!」
우사미 「흥분한 와중에 미안하지만 주방에 빵 굽는 가마는 없어」
하이자쿠라 「아우, 그랬어요……」
우사미 「하지만 팥을 사용한 메뉴는 괜찮을지도 모르겠네」

 나도 하이자쿠라가 보고 있던 메뉴판을 들여다본다.

우사미 「지금 없는 메뉴라고 하면 단팥죽이나 오하기, 사쿠라모찌……」
하이자쿠라 「사쿠라모찌?」
우사미 「떡 반죽으로 팥을 감싸고 그 위를 벚나무 잎 소금 절임으로 감싼 과자야」
하이자쿠라 「벚나무 잎에는 독이 있지 않나요!?」
우사미 「그렇지만 소금에 절이면……」
하이자쿠라 「그랬죠, 괜찮았어요!」

 초봄에 있었던 독이 든 티 펀치 사건은 제대로 하이자쿠라에게 교훈으로 남아 있는 듯하다.

오토메 「아, 여기에 있었나」

 계단에서 내려온 오쿠노미야 씨가 나를 찾고 있었는지 말을 건다.

우사미 「무슨 일 있으세요?」
오토메 「카라스바, 열쇠를 잊은 모양이다」

 그렇게 말하고 흑묘정 열쇠를 내보인다.

오토메 「그러니까 전해 주자고 생각해서 말이지」
우사미 「돌아올 때까지 안 자고 기다리고 있을까요?」
오토메 「아니, 몇 시에 올지 모르는 상대를 기다리는 건 쓸모 없다. 내일 일에 차질이 생기고 말지」
우사미 「그러면 대신 다녀올게요」
오토메 「하지만……」
우사미 「괜찮아요, 맡겨주세요!」

 솔직한 기분과 약간의 호기심으로 나는 자신 있게 가슴을 폈다.

오토메 「하지만 6구는 환락가다. 너 혼자 보내기도 불안하구나……」

 오쿠노미야 씨는 시선을 하이자쿠라에게 옮긴다.
 그리고 입술을 열고 ──조금 주저하듯, 아무 말 없이──, 그렇지만 곧 말을 꺼낸다.

오토메 「하이자쿠라. 우사미 군과 함께 6구로 가줘. 그리고 용건이 끝나면 즉각 귀환하도록」

 군인 시절의 흔적인지 말 한마디 한마디에 힘이 배어 있었다.

하이자쿠라 「넷! 알겠어요. 저, 도움이 될게요!」


집필 : 카이
삽화 : 마로야카
CV : 쿠스노키 토모리 (카라스바)
한국어 번역 : 레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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